2007년 12월 23일
하라쥬쿠, 오모테산도 & 안도 타다오 & 오모테산도 힐즈

安藤忠雄が選ぶデゼインと絆のある街
原宿・表参道
닛케이 23PLUS 『노는, 즐기는, 생각하는』"도쿄통매거진"
안도타다오가 고른 디자인과 유대가 있는 거리
하라쥬쿠, 오모테산도
느티나무 가로수가 부르는 미래로 이어지는 풍경
초록이 가득한 가로가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주고, 문화 정보를 계속해서 발신하는 거리, 하라쥬크・오모테산도.1920년, 메이지신궁의 창건을 계기로, 정면의 참배길로서 완만한 경사가 이어지는 폭 40미터, 전체길이 1킬로미터의 큰 길을 정비했다. 7년후에는 처음으로 일본에 근대적인 집합주택「同潤会青山アパート도우쥰카이 아오야마 아파트」가 완성되고, 거리의 심볼이 되었다. 종전후에는 요요기연병장터(지금의 요요기공원)에 미군숙사「ワシントンハイツ워싱턴 하이츠」가 건설되었기 때문에, 오모테산도를 주위를 따라서 KIDDY LAND과 같은 미군을 위한 점포가 족족 만들어졌다. 1964년의 도쿄올림픽에도 워싱턴 하이츠의 터는 선수촌을 건설했기 때문에, 하라쥬쿠 오모테산도 에리어는 외국문화의 창구로서 역할을 했다. 요요기공원옆의 보행자천국에는, 「竹の子族 버섯족」으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등, 「ラフォーレ原宿 라포레하라쥬쿠」나 타케시다오오리를 합쳐서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이 거리에도 변화가 보인다. 2003년, 약80년에 걸쳐 사랑받아온 도우쥰카이 아파트가 노후되어서 헐어지고, 3년뒤 상업스페이스와 주택스페이스를 겸한 복합시설「表参道ヒルズ 오모테산도힐즈」로서 다시 태어났다. 건설을 담당했던 분이 이번회의 나비게이터, 건축가 安藤忠雄 안도타다오씨(안도씨는 대학도 안나왔지만,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건축가, 딱 한번 대학에서 수업을 들어본적이 있다)
1941년 오사카출신의 안도씨는 독학으로 건축을 배워서, 전세계를 여행한 후, 1969년 안도타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탁월한 건축물을 만들어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건축교육에 힘을 쏟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재생이나 재해부흥지원등의 사회활동에도 솔선해서 참가. 세계의 거리를 파악하고 있는 안도씨에게, 하라쥬쿠 오모테산도의 매력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건축가로의 꿈을 밀어주는 초록이 가득한 경관"
부흥이라는 큰 목표하에 일본이 필사적으로 살아갔던 제2차대전후의 「昭和 쇼와」라는 시대가 여러가지 분야에서 다시 한번 각광을 모으고 있다. 그러한 쇼와 30~40년대에 다감(예민한) 청춘시절을 보낸 안도씨는 하라쥬쿠 오모테산도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것은,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던 쇼와 39년(1964년) 이었다.
「일본도, 자기자신도 꿈을 향해 노력하던 시기로, 올림픽 성공에 따라서, 일본의 부흥이라는 것이 겨우 세계에 인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선수의 노력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또한 丹下健三 탄게켄죠 선생이 설계한 국립요요기경기장등은, 참신한 표현과 일본인의 기술력의 높음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뒤, 저도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만, 건물앞에 선 순간, 커다란 감동이 전신을 감싸, 어떻게 해서라도 건축가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안도씨는 하라쥬쿠역을 경유해서, 느티나무 가로수를 통해서 네즈 미술관까지 걸었다. 도중에 도우쥰카이 아오야마 아파트의 존재에 다시한번 마음을 빼앗겼다.
「관동대지진후, 도시에 안전하고 안심할수 있는 집합주택을 만들려고 건설되어진 것이지만, 일본에는 이정도의 하이레벨인 건물을 만들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는 것에 다시한번 놀라, 안쪽정원을 보고, 공공스페이스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담쟁이 덩쿨로 둘러싸인 건물과 느티나무 가로수이 녹아있는 경관이 제 마음속에 각인되었습니다.」
인연이란 것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그후 약 40년뒤, 건축가로서 성공해서, 대단히 바쁜 안도씨에게, 도우쥰카이 아오야마 아파트의 재개발의 의뢰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도로로 싸인, 좁고 긴 단지였기 대문에 높이나, 일조에 관해서 제한이 있어서, 고층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또한 도시경관에 배려한 외관과 따뜻함이 있는 주거동배치는, 일본의 집합주택건축의 선구로서 널리 침투되어 있었던 것도 있어서, 재개발에는 반대의 소리도 있었다. 게다가 이 건물에 애착을 가진 백수십명의 조합원과의 의견조정도 곤난함을 더해서, 당초는 안도씨도 「재개발은 무리」라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제 자신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장소였기때문에, 어쨌든, 한명한명 철저하게 예기하자」라는 결의를 가슴에, 3개월에 한번씩의 페이스로 5년동안 대화를 계속했다.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가다 보니, 건물자체의 설계또한 중요하지만, 도시경관과 어떻게 융합하게 할것인가 하는 것이 열쇠가 될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느티나무 가로수 보다 높지 않은 건물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게다가 옥상을 전부정원으로 해서, 느티나무로 연결해나가자는 제안을 하게 된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오모테산도힐즈는, 지하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중심부의 바람이 통하는 공간(통풍공간)을 지하3층, 지상3층의 6증으로 했다. 건물의 높이는 제한되어서, 옥상에는 정원, 외벽에는 담쟁이덩쿨을 얽히게 해서,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초록이 풍부한 도시경관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게 되었다. 또한 오모테산도와 같은 경사를 그대로 건물안의 통풍이 되는 공공장소에 채용해서 「제2의 오모테산도」을 재현하게 된것도, 이 거리의 매력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안도씨의 고집이다.
「장래적으로는 가능한한 거리의 간판을 없애서, 녹지화를 조금더 촉진해간다면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거리라 하면, 간판투성입니다만, 슬슬 내용으로 승부하는 가게가 증가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서, 오모테산도힐즈부터 간판을 없앤것입니다」
예전 대학 2학년때 안도선생님의 수업을 한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건축물은 건축물 하나만을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을 살릴수 있는 건축물이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오모테산도 힐즈에도 그의 철학은 또다시 실현된거 같다,
마지막으로, 안도씨의 도시풍경에 대한 철학으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풍경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야 말로, 우리들 인간과 거리를 잇는 소중한 유대관계 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도시를 상징하는 풍경을 계획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거 같습니다.
안도 타다오 씨의 약력을 간단히 설명하면,(wiki 참조)
http://ja.wikipedia.org/wiki/%E5%AE%89%E8%97%A4%E5%BF%A0%E9%9B%84
1969년 안도타다오건축연구소를 오사카에 설립, 개인주택을 많이 다루었다.
1977年 로즈 가든(고베시)등의 초기작품의 여러개는,동생인孝雄씨가 소속되어 있더 세츠모드세미나출신의浜野安宏이대표를 맏고 있는 하마노상품연구소(1992년 하마노종합연구소로개명)와함께 실현했다.
1976년 「스미요시노 나가야」(오사카시)가 높이 평가되, 대규모의 공공건축이아닌 작은 개인주택으로서, 처음으로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 이후 콘크리트 우치하나시(打ち放し)과 기하학적인 폼에 의한 독자적인 표현을 확립, 세계적인 평가를 받음.
1980년대 칸사이주변(특히 고베 키타노쵸, 오사카 신사이바시) 에서의 상업시설설계나 사원, 교회설계를 계속해서 건설.
1987년 예일대학 객원교수
1988년 콜롬비아대학 객원교수
1989년 하버드대학 객원교수
1990년 이후는 공공건축, 미술관건축, 또한 전국적인 또는 해외의 일도 늘어났다.
1991년 뉴욕근대미술관에서 개인전개최
1993년 파리퐁피드센터에서 개인전개최
1997년 도쿄대학공학부 건축학과 교수취임
2000년 中坊公平씨와 함께「瀬戸内オリーブ基金」설립
2002년 남캘리포니아대학 객원교수
2003년 도쿄대학 정년퇴직후, 도쿄대학 명예교수
2005년 도쿄대학 특별영예교수
# by | 2007/12/23 23:33 | Life in Tokyo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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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너무 말을 비비 꼬아서 말하는게 짜증나지,
なになにだということであると思います。ヲヲ
그건 몰랐당.